성장하는 거실_엄기성

성장하는 거실_ 엄기성 전

2019. 2. 11(월) - 3. 10(일)

오픈닝 리셉션 2019. 2. 16(토) 5pm
HArt

햇살이 좋은 2월, 서촌의 기다랗고 작은 전시공간은 작가의 작업실이자 리빙룸이다. 
이곳에서 작가는 4일간 작가 자신이 바라보는 심상과 관점으로 작품을 설치하고 다시 배치하는 작업을 반복하였다. 백남준의 ‘TV부처’에서 영감을 받은 'Hommage to PAIK'에서는 이 4일간의 설치기록을 상영한다. 관람객은 TV앞에 놓여있는 푸른색의 육중한(그러나 불안한 성질의) 도자 의자에 앉아 영상에서 흐르는 설치과정을 통해 창작과 고뇌가 함께하는 작가의 시공간을 함께 나눌 수 있다. 작가가 애정으로 수집한 맥도날드 빈티지 기념품들을 매단 샹들리에가 그 머리 위에서 흔들리고 있고, 병풍처럼 세워진 자개장 문짝에 새겨진 "VANDALISM'이라는 붉은색 네온사인은 최근 작가가 관심을 보이고 있는 이슈를 전달한다.        

사실 이 자개 문과 샹들리에 그리고 TV 등은 모두 작가가 이태원에서 주운(작가는 스스로가 ‘섹터‘라고 명명한 곳에서 ’쇼핑‘을 한다고 얘기한다) 요소들이다. 작가는 버려지거나 수집한 빈티지 물건들에 작가의 전공인 도예를 접목시켜 새로운 작업으로 확장시키고 있다. 더 나아가 아예 흙을 배제한 다양한 작품으로 경계를 넘고 있다. 첫인상이 강렬한 전통탈을 모티브로 가져와서 만든 “The head"의 경우, 차가운 물성의 도자로 만든 얼굴 부분과는 달리 눈에서는 따뜻한 조명을 반짝이며 현대적인 해학을 보여준다. 도자와 실험, 전통과 빈티지, 버려진 것들과 취향의 수집 등 특정 짓지 않는 소재들과 작가의 이러한 관심은 계속 진행되고 있는 과정이며, 이번 전시는 이러한 변화를 보여주는 한 작가의 시공간전이다.

“나의 작품은 나의 현재의 심정을 대변하고 있다. 정확한 정의를 내릴 수도 없는 나 본인이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혹은 앞으로 닿지 못한 미지의 이야기일수도 있겠다.” -작가노트 중

도예를 전공한 엄기성은 학교에서 줄곧 합을 만들어 왔다. 뚜껑이 맞아 떨어져야하는 합의 특성상 정교한 작업이 요구된다. 신중하고 섬세하게 형태를 매만지며 감정을 최대한 절제해야했을 것이다. 스스로를 다스리는 단련의 시간. 크지 않고 뚜껑이 있는 형태의 범위를 가진 기물에서도 작가는 재료적 실험을 성실히 해 왔다. 도자기에 나무, 장석, 자개, 시멘트 등 다양한 소재를 접목시키며 창작의 한계를 넓히고자 하였다.

합과 빈티지, 업사이클링 오브제 등 전혀 다른 사람이 만든 것 같은 이 상충되는 작업들이 모여 공존하고 있는 전시공간은 그동안 작가가 전통과 현대, 개인적 취향과 대중, 젊음과 이방인, 기술과 철학 속에서 타협과 대립을 함께하며 지내온 시간들을 보여준다. 

엄기성은 이태원에서 살고, 작업하고 있다. 다양한 문화가 병존하는 곳. 울산이 고향인 작가가 서울 이태원에 정착하고 살아가면서 느끼게 되는 이방인적인 불안함과 젊음성이 자연스럽게 흡수하는 변화의 흐름을 모두 호흡하며 지내왔다. 이는 작가가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는 혼재성이다. 서울 한복판에 위치하였으면서도 상반되는 문화들이 규정할 수 없는 정체성으로 정립된 지역. 섬세한 합을 만들던 도예가가 사회적인 이슈에 주목하고 그 관심을 투영시키는 작업을 하는 흐름의 변화. 잘 만들고자 하는 기술적인 고민을 넘어 이질, 조화, 환경, 전통 등 사고의 표현으로의 예술과 공예의 모호한 공존이 맥락을 함께 한다.

작가는 자주 비정기적으로 쇼핑을 나간다. 좋은 쓰레기가 버려져 있는 곳에서 주워온 갖가지 물건들은 그의 최근 작업의 중심에 있다. 트렌디한 편집샵이 주 무대인 현재의 공예계에 실험적이고 다양한 오브제로의 용감한 작업 변화, 그렇지만 결국 쓰임이 있는 조형으로서의 경계를 보여주는 작가 거실의 전경. 여러 작품들이 중첩되기도 하고 청춘작가라면 으레 느끼고 지나가는 새롭지 않은 고민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담론이 필요한 공예계이지 않을까? 과연 그 경계의 고민은 어떤 의미가 있는지 그리고 또 그의 성장은 어떤 주목성이 있는지를 말이다.

이 전시는 예술경영지원센터의 기금으로 진행되었습니다.